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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프랑크 James Franck

제임스 프랑크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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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I (막스플랑크연구소)
  • 작성 2014-09-15
  • 조회 2,575
  • 출생1882-08-26, 독일 함부르크
  • 국적 미국
  • 분야물리학
  • 소속카이저빌헬름협회 연구원, 시카고대학교 교수
  • 출신대학하이델베르크대학교, 베를린대학교
  • 주요업적전자가 원자에 충돌하는 현상에 대한 법칙
  • 수상노벨 물리학상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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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1925년에 원자에 입사된 전자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헤르츠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1882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화학, 베를린대학교에서 바르부르크의 지도 아래물리학을 공부하고 1911년에 베를린대학교에서 조교수가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협회의 물리부 주임이 되었고, 1920년에는 괴팅겐 대학에서도 원자물리학 연구를 계속하였다. 초기 연구는 기체의 전기전도에 관한 것이었지만, 전자, 원자, 분자운동의 분석을 더해 전자의 비탄성충돌을 실험하였다. 1920년 프랑크헤르츠의 실험으로 보어의 원자구조론을 뒷받침한 것이다. 괴팅겐대학교로 옮긴 후에는 기체의 형광연구를 추진했고, 1925년에는 아이오딘의 광화학분해에 관련하여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현재 프랑크콘던의 원리라고 불린다.

벨상 수상 이후, 제임스 플링크는 세계가 전쟁을 벌이는 것에대해 강경히 대항했다. 히틀러의 세력이 발발한 이후에 프랭크는 나치의 새롭게 통과된 반유대주의의 제정법을 반대하기 위해 괴팅겐 물리학 교수자리를 사임하였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교수직을 하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시카고대학교 야금연구소의 화학부장으로 맨해튼계획에 일조하긴 했으나, 원자 폭탄의 계발과 함께, 많은 과학자들은 그들 스스로 도덕적 문제에 직면하였다. 프랭크는 이러한 도덕적 의미들을 고려한 사람들 중 하나였고, 철학적 자기성찰과 정치적 행동을 주도했다. 1945년에 프랑크보고를 제출하고, 툭히 사람이 사는 지역에 원자폭탄 투하를 반대하였다.

1911년 Ingrid Josefson와 스웨덴 구텐베르에서 결혼 하였고 두명의 딸을 낳는다. 그의 첫번째 아내가 죽은 후 그는 194년에 미국 북 카롤리나 더럼에 있는 듀크 대학교 물리학 교수인 Hertha Sponer와 결혼한다. 그는 1964년 독일 괴팅겐 방문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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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1925년의 노벨 물리학상은 원자에 입사된 전자의 거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 공로로 제임스 프랑크 교수와 구스타프 헤르츠 교수에게 수여키로 하였습니다.

물리학이라는 거대한 나무에서 가장 새롭고 번성하는 가지는 원자물리학입니다. 1913년에 닐스 보어가 그의 새로운 과학을 정립하였을 때 그가 다룬 물질은 빛나는 물체의 복사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축적한 자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분광학 최초의 발견은 빛을 발하는 기체가 방출한 빛을 분광기로 관찰하면 분광선이라고 불리는 많은 수의 다른 선들로 쪼개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분광선의 파장들 사이에 단순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885년 수소 분광에 대한 발머의 실험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이후 리드베리가 수많은 원소들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이런 발견으로 인해 이론물리학에서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즉 하나의 원소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수의 다른 분광선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리고 한 원소의 분광선에 나타난 빛의 파장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만 모두 헛수고였습니다. 1913년 보어는 분광학의 수수께끼를 풀어냈는데 그것은 오로지 고전물리학과 완전히 결별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보어의 기본적인 가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원자는 무한한 수의 다른 상태, 이른바 정상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정상상태는 모두 다른 에너지 준위를 갖고 있습니다. 두 준위 사이의 에너지 차이를 플랑크 상수 h로 나누면 원자가 방출하는 분광선의 진동주파수가 얻어집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가정에 덧붙여 보어는 많은 특수한 가정들을 제시하고 수소원자와 헬륨이온의 분광선들을 계산했습니다. 계산결과와 실험결과는 놀랄 만큼 정확하게 일치했으며 그 이후 거의 전 세대의 이론 및 실험물리학자들이 원자물리학과 그것의 분광학 응용에 매진하였습니다.

보어의 더 구체적인 가정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의 다른 가정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양자역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보어의 가정은 구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어의 가정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사실들과 관련지어 볼 때 너무나 한계가 많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원자의 수수께끼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립 중인 새 이론도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이론도 보어 이론의 심오한 확장으로 이름 붙여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보어의 기본 가정이 여전히 변하지 않으며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생각들이 계속 폐기되는 이런 현실, 원자물리학에서 세운 모든 가정들이 매우 위태로워 보이는 지금 과거를 되돌아보면 원자가 다른 상태들로 존재할 수 있고 각각의 상태들은 에너지 준위로 특징지을 수 있으며 원자에서 방출된 분광선들은 이러한 에너지 준위의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고 가정하고 연구를 시작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1913년 보어의 가설은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게 했는데 그 이유는 보어의 가설들은 더 이상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실험적으로 증명된 사실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설들은 제임스 프랑크 교수와 구스타프 헤르츠 교수가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개발에 대한 공로로 올해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프랑크 교수와 헤르츠 교수는 물리학의 새로운 한 분야를 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자의 충돌에 대한 이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자, 이온, 분자, 그리고 분자 집단들의 충돌에 관한 이론입니다. 이것은 두 교수님이 전자가 원자나 분자와 충돌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최초로 문제 제기를 하였다거나 혹은 그들의 발견이 일어날 길을 마련해 주고, 기체 속에서 전자가 어떻게 흐르는지에 대한 실험을 위한 일반적인 방법을 창안하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레나르트 교수입니다. 그러나 프랑크 교수와 헤르츠 교수는 레나르트 교수의 방법을 발전시키고 세련되게 만들어 원자, 이온, 분자 및 분자집단의 구조를 연구할 때 훌륭한 도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프랑크 교수와 헤르츠 교수는 전자와 다른 유형의 물질 사이의 충돌에 관한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자료들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지금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원자의 다른 상태들과 빛의 복사와의 관계에 대한 보어의 가설이 실재 현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 준 점입니다.

프랑크 교수님, 헤르츠 교수님.
두 분은 여러 다른 가설들이 계속해서 넘쳐나고 있는 분야에서 명료한 사고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실험을 통하여 미래의 연구를 위한 확고한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두 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전하로부터 1925년의 노벨상을 수상하시기 바랍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 물리학위원회 C. W. 오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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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MPG(www.mpg.de/en),google, wikipedia, naver, 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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