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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니콜 Charles Nicolle

샤를 니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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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eur (파스퇴르연구소)
  • 작성 2016-03-14
  • 조회 5,189
  • 출생1866-09-21
  • 국적 프랑스 루앙
  • 분야미생물학
  • 소속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 출신대학파리대학교
  • 주요업적티푸스연구
  • 수상생리의학상(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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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1903년 튀니스의 파스퇴르연구소장이 된 이후 32년간 발진티푸스 및 열대병의 병원을 연구하였다. 1909년에 발진티푸스균이 이에 의하여 매개되어 감염된다는 것을 발견하여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진티푸스의 예방에 공헌하였다. 1928년에는 발진티푸스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1866년 9월 21일 루앙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지방 병원 의사였다. 니콜은 그의 형제들과 함께 그의 아버지로 부터 생물학 과외를 받았으며 의대에 진학하여 그의 형들보다 먼저 3년 동안 공부하였다. 파스퇴르 연구소 산하 기관인 의학 시설에서 연성 하감(Soft chancre)에 관해 학위 논문을 연구해 189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루앙으로 돌아와 의사단 회원이 되었고 1896년 세균학 연구소 소장으로 임명 받았다. 그가 튀니스의 파스퇴르연구소 소장으로 임명 받았고 된 이후 32년간 발진티푸스 기타열대병의 병원을 연구하였고 1936년 그가 숨을 거둘 때 까지 직책을 이어갔다.

그의 초기 경험에서 니콜은 암을 연구했고 루엔에서 디프테리아 항혈청 연구에 투자했다. 북 아프리카에서 그의 영향력 아래 튀니지 연구소는 빠르게 세균학 연구, 백신 개발, 전염성 질병 대부분과 싸우는 혈청에 고나한 연구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09년에 발진티푸스균이 이에 의하여 매개되어 감염된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 중 발진티푸스의 예방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 발견은 기존 이와 연결된 유행성 발진티푸스와 마린 발진티푸스 사이의 차이를 명백히 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토끼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또한 현대 몰타열, 진드기열, 성홍열, 홍역, 인플루엔자 트라코마, 결핵과 같은 자연 바이러스에 관한 연구로 치료 백신을 소개하여 몰타열에 대한 지식에 유용한 기여를 했다.

그는 세균한계 있어서 혁신적이고 새로운 많은 기술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니콜은 인공 배양액에서 레이쉬마니아 도노바니와 레슈마니아 트로피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 첫 번째 인물이다. 발진티푸스 열의 전이에 대한 매커니즘의 발견은 세계대전 당시 질병 예방에 기반이 되었다. 엘리스 에비스(Alice Avice)와 1895년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1936년 2월 28일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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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1928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튀니스에 위치한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인 샤를 니콜 박사님입니다.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예방의학 분야에서 티푸스를 정복한 이 위대한 연구자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티푸스는 급성 전염병으로서 홍역과 매우 비슷한 방법으로 전염되고 면역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심각한 경우 환자는 의식을 잃거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병은 발진이 일어나기 때문에 발진성 티푸스라고도 불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열, 즉 장티푸스와는 완전히 다른 질병입니다. 아이들에게 발병하는 유행성 티푸스는 비교적 양성이지만 어른들의 경우 사망률이 50~60퍼센트에 이르기도 합니다.

티푸스는 역학적으로 여러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내과 의사들은 이러한 특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의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이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티푸스는 홍역이나 감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직접적인 접촉, 먼지 또는 호흡기를 통해(비말감염)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1880년에서 1890년경에 벌레에 의한 감염경로가 알려졌습니다.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기생충을 티푸스의 전염 원인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 병의 실제 감염경로도, 그리고 퇴치하는 방법도 알 수 없었습니다.

티푸스의 또 다른 특징은 심각한 재난과 함께 발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발병한 티푸스는 갑자기 악화되어 심각하게 유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대부분 이 병의 희생자는 전쟁 또는 가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으며 때로는 그 사망자 수가 수십만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사람들은 이 질병을 캠프 티푸스, 가뭄 티푸스, 감옥 티푸스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티푸스의 역사는 인류 불행의 역사였습니다.

이 질병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430년경에 그리스의 아티카 지역, 그중에서도 특히 아테네를 황폐화시켰던 병도 티푸스였고, 투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에 발병했던 질병도 유행성 티푸스였습니다. 사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이 질병이 세계 1차 대전 중에 발병한 전염병과 세세한 부분까지도 일치합니다.

세계 1차 대전 후에도 곧바로 전염병이 발생하였고 유럽의 30년 전쟁이 끝났을 때에도 중부 유럽에서 티푸스가 발병하였습니다. 그후 나폴레옹 전쟁 때도 티푸스가 다시 발병하여 철수하던 나폴레옹의 대규모 군대는 러시아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었으며 시민들 역시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크림 전쟁, 러시아 쿠르크 전쟁 역시 전염병으로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1914년까지는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평화와 번영을 누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티푸스 발생 범위는 유럽의 어느 외딴 곳이나 비유럽 국가에 제한되어 있는 듯 보였고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지역에만 티푸스가 존재했던 것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비유럽 국가들 중 북아프리카에서는 수 세기 동안 겪어 온 이 질병을 국가적 재앙으로 생각했습니다. 샤를 니콜 박사님은 튀니스에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 소장이 되자마자 이들 나라의 티푸스 발병과 관련된 실질적인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환자들의 집에서 그들의 침대와 더러운 옷들을 검사했고 이와 함께 병원 내부에서도 엄격한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런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함께 일하던 동료 두 사람이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니콜 박사님은 이전의 연구자들이 놓쳤던 사실들을 발견했습니다.

티푸스 환자가 병원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리고 환자의 옷을 받는 순간에도 감염은 진행되고 있으며 그들이 깨끗이 씻은 후에 병원 환자복을 입고 나서야 완전히 무해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 병원 환자복을 입는 순간, 환자들은 누군가를 감염시킬지도 모를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고 비로소 일반 병실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니콜 박사님은 이런 현상이 환자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병원체를 전염시키는 어떤 요인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전염을 일으키는 요인은 환자가 씻고 옷을 갈아입음으로써 제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환자의 몸이나 옷에 살고 있는 몸니, 즉 기생충이 그 전염 요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단순한 관찰은 결국 니콜 박사님의 핵심적인 업적이 되었습니다.

그후 니콜 박사님은 동물을 대상으로 후속 실험을 하였습니다. 이전에 몇몇 연구자들이 환자의 혈액을 주사하여 건강한 사람에게 티푸스를 접종시킨 예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물 접종 실험에 성공한 적은 없었습니다. 니콜 박사님도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09년 초 마침내 침팬지에게 티푸스를 접종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침팬지로부터 다시 혈액주사를 통해 보다 하층 동물인 원숭이에게 티푸스를 접종시키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1909년 9월에는 티푸스에 감염된 원숭이를 물었던 몸니가 건강한 동물을 물기만 하면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염체로서의 몸니의 역할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 후로 이 무서운 질병의 비밀이 차례로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몸니에 의한 전염 조건이 밝혀진 것입니다. 티푸스 환자의 혈액은 열이 나기 몇 시간 전부터 회복하는 날까지도 감염의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병이 진행되는 동안에, 심지어 병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도, 그리고 열이 다 가라앉은 후에도 몸니는 환자로부터 병원성 물질을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벌레들이 모두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성 물질이 벌레의 몸속에서 증식될 때까지는 약 1주일이 걸리며 이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전염성을 띠게 됩니다. 그리고 벌레에 물려야만 전염되는 것도 아닙니다. 감염된 벌레의 배설물, 그리고 오염된 옷이나 피부로도 충분히 전염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피부를 긁는 것만으로도 감염되어 발병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전염 역시 직접 벌레에 물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감염 경로였습니다.

니콜 박사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티푸스 균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벌레의 전염성은 균에 감염된 성충이 죽으면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질병 퇴치에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니콜 박사님과 그의 동료들은 연구 초기 단계에서 한 번 이 병을 앓고 난 원숭이가 병에 대한 저항성이 생긴다는 것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티푸스 예방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회복기 환자의 혈청으로 예방접종을 실시하여 혈청이 가진 질병 예방 및 치료 효과를 연구하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또한 니콜 박사님은 기니피그를 대상으로 한 티푸스 접종에도 성공하였습니다. 이 성공으로 티푸스에 관한 연구는 다시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인공적으로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형태학적·생태학적 지식은 아직까지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한 동물에서 다른 동물로의 성공적인 접종은 티푸스 균을 실험실에서 무제한 유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습니다.

기니피그에서 티푸스를 연구하던 중에 니콜 박사님은 감염된 동물이 뚜렷한 증상을 나타내지 않아도 전염성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미열조차 없다고 해도 그 동물은 감염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질병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니콜 박사님은 이런 형태의 티푸스를 ‘불현성’ 티푸스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잠복성 전염병의 기본적 형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니콜 박사님은 이전까지의 연구와 전혀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개념은 이 전염병의 직접적인 치료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몸니에 의한 티푸스 전염 경로 연구는 실제적으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전염 경로에 관한 연구 결과는 이 무서운 질병의 합리적인 치료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니콜 박사님과 동료들이 옛날부터 겨울마다 이 질병에 시달려 왔던 튀니스 지역에서 이 질병을 완전히 퇴치하는 데 2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10년 그 당시에 어느 누가 니콜 박사님의 연구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이용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많은 포로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티푸스가 발병하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유럽의 의사들은 이 병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전염병 예방책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티푸스는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그리고 가정에서 가정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또한 역학적 법칙과도 무관하게 빠른 속도로 전염되었습니다. 군인들은 이 엄청난 병마의 위협을 받았으며, 전쟁으로 황폐화된 동부 쪽의 일반 시민들에게도 같은 형태로 전염병이 퍼져나갔습니다. 발칸 반도는 매우 상황이 안 좋았던 반면 핀란드에서 메소포타미아까지의 지역은 무사했습니다.

니콜 박사님의 연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니콜 박사님의 연구를 광범위하게 임상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황폐화된 세르비아 마을을 통해 티푸스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전쟁 주변 지역에서는 니콜 박사님의 위생측정 방법으로 티푸스 발병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그의 연구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전염병인 스페인 독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독감은 본래 티푸스보다 덜 심각한 병이었음에도 그 피해가 매우 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티푸스를 퇴치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 질병의 특징은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이 질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약이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제 티푸스는 단지 전염병으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병으로 인한 더 이상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샤를 니콜 박사님의 연구 업적으로 이 병은 완전히 정복되었으며 전 인류는 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니콜 박사님이 참석하지 못하셔서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를 대신해서 수상하는 프랑스 대사님께서 상과 증서를 박사님께 전달해 주실 것입니다. 더불어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진심어린 축하와 존경을 함께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 교수위원회 F. 헨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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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티푸스 연구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 노벨 생리 의학상, 2010. 1. 18.,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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