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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 전자도서관

 

막스 퍼루츠 Max Perutz

막스 퍼루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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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endish Laboratory (캐번디시 연구소)
  • 작성 2015-09-16
  • 조회 6,129
  • 출생1914-05-19 오스트리아 빈
  • 국적 영국
  • 분야화학
  • 소속캐번디시 연구소
  • 출신대학카롤린스카 대학
  • 주요업적단백질 구조에 관한연구
  • 수상노벨 화학상(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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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영국의 화학자. 결정(結晶)헤모글로빈의 X선회절에 의한 분자구조 결정(1958) 연구로 유명하다. 1962년 단백질구조에 관한 연구로 J.켄드루와 함께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막스 퍼루츠는 1914년 5월 19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퍼루츠와 그의 가족들은 1930년대의 다른 유럽인들과 같이 강력해지는 독일 나치정권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퍼루츠가 스스로 독일인으로써 영국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동안 이웃나라는 침략당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부모님은 비엔나에서 프라하로 도망쳤다. 그해 여름 그들은 독일군의 맹습을 당한 슬로바키아에서 스위스로 피신하였다. 퍼루츠는 그의 망명인 으로써 새로운 분야에 흔들렸고 몇몇 사람들에 의해 그는 영국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이 확실히 줄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932년 퍼루츠는 비엔나 대학에 들어가 유기 화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고수하는 고전 유기 화학은 시대에 뒤쳐졌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26년까지 과학자들은 엔자임이 단백질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세포 화학에 관한 엔자임의 촉매 효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루츠의 교수는 잘 알려지지 않는 새로운 범위의 연구에 집중하였다.

1934년 그의 논문 주제를 찾는 동안 페루츠는 비타민을 포함한 유기체 구송에 관한 강연을 듣게 되었다. 연구 주제를 찾지 못한 불안감은 생화학 연구에 발맞춰 커져졌다. 졸업생으로는 드물게 직업을 갖고 해외에서 공부하던 때, 페루츠는 케임브리지에서 연구하기를 원했고 오스트리아를 떠나 그 당시에는 특별한 곳이라 여겨지는 곳에 가서 연구하길 원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휴고 페르츠의 섬유 공장에서 일하며 그는 얼마 되지 않는 학생 봉금을 모아 영국에서 생활할 초기 자금을 모았다.

1936년 퍼루츠는 생물학 분야의 X-ray 결정학 사용의 선구주자였던 존 버낼(John Desmond Bernal)의 케임브리지 연구소 연구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미네랄을 연구에 배정되는데, 기대 했던 것과는 달리 영국의 물리학자 버널(Bernal)이 그의 결정학을 연구할 동안 몇몇 직원들과만 토의할 뿐 학생과는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 퍼루츠는 그에게 주어진 연구 과제, 오래되고 어둑한 그의 연구실의 환경과 미네랄 결정학의 고전적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전망 있는 분야인 X-ray결정학에 관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퍼루츠는 케임브리지는 여생을 보내길 꿈꿔왔던 곳이라고 말했다.

1937년 비엔나에서 그의 여름 방학 동안, 퍼루츠는 단백질 전문가이자 사촌과 결혼한 필랙스 호로비츠(Felix Haurowitz)를 찾아가 그의 연구의 앞으로 방향성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1920년대부터 헤모글로빈을 연구해오던 호로비츠는 피를 빨간색으로 만들 뿐 아니라 헤모글로빈의 빨간 혈구는 몸을 통해 피가 전달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을 증가시키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위해 간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의 역할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구조가 해결되어야 하는 중요한 단백질임을 퍼루츠에게 강조했다. 헤모글로빈에 대한 결정학과 물리화학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퍼루츠는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헤모글로빈의 주도권적인 권위자 길버트로부터 말의 헤모글로빈 결정체를 얻는다. 그 당시 X-ray 결정학의 주요 목표는 생물학적 활동에 있어 연관된 중요도에 관계없이 어떠한 단백질 구조를 결정짓는 것 이였기 때문에 퍼루츠는 소화효소 키모트립신의 결정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0년 페루츠가 박사학위를 받던 해 그의 연구는 독일군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침략한 독일 때문에 중단하게 된다. 외국인의 경계가 증가할수록 영국군은 페루츠를 포함한 모든 외국인 체류자들을 체포했다. 수용소에서 수용소로 옮겨 다니며 물리학자와 과학자들이 감금되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영국군은 값진 지식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1941년 퍼루츠는 다른 과학즈들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결정체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1942년 28살 때 퍼루츠는 기셀라 클라라 페이서(Gisela Clara Peiser)과 결혼했다. 전쟁 후 1945년, 퍼루츠는 헤모글로빈 결정체의 X-ray사진에 퍼저있는 얼룩진 반점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미오글로빈과 근육에 산소를 저장하는 엔자임에 대한 연구를 진행던 박사과정 학생들과 존켄드류와 함께 협동연구를 시작한다.1946년 퍼루츠와 켄드류는 분자생물학 연구를 위한 의학 연구 심의회를 설립했고 퍼루츠는 소장을 맡았으며 DNA구조를 포함한 많은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퍼루츠는 X-ray 결정학 기술을 보안했고 1953년 마침내 동형 전환이라고 알려진 방법으로 어려운 단계의 딜레마를 풀고야 말았다. 수은이 첨가된 헤모글로핀 단백질을 수은이 첨가되지 않은 헤모글로빈과 다른 위치에 배치시켜 비교하여, 그는 다른 헤모글로빈 반점의 기준점을 발견했다. 이 별견이 여전히 길고 끝없는 수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지만 컴퓨터의 발달로 이 과정을 빨리 처리되고 있다.

1979년 그가 출간한 책에서 퍼루츠의 오랜 동료 캔드류는 지난 시간의 작은 변화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만약 30년 전 토요일 전역 내가 연구실에 들어갔다면 지금과 같이 막스는 흰 가운을 입고 결정체를 연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퍼루츠는 1979년 은퇴 이후에도 케임브리지의 분자 생물학 연구실에서 교수로 연구를 계속해 나갔으며 케임브리지대학 과학 협회의 후원자로 헌신했다.

<공동수상>

J. 켄드루
옥스퍼드에서 출생하였다.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한 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항공성에서 레이더 연구에 종사하였다(1940∼1945). 1947년 케임브리지대학의 특별연구생을 거쳐, 영국 의학연구평의회연구원(1947∼1974), 분자생물학연구소의 의학연구평의회 부회장(1953∼74), 왕립 데이비 패러데이 연구소 강사(1954∼1968), 유럽 분자생물학협회 사무총장(1970∼1974) 등을 역임하였다. 그 후 1975년부터 하이델베르크대학의 유럽 분자생물학연구소 소장으로 있었다. 한편, 1947년부터 케임브리지대학에서 M.F.퍼루츠와 함께 X선해석에 의한 단백질의 구조 등을 연구, 미오글로빈의 전체구조를 해명한 업적으로(1960), 퍼루츠와 공동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1962). 저서에 《The Thread of Life》(196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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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1869년에 스웨덴 화학자인 크리스티안 빌헬름 블롬스트란드는 『오늘날의 화학』이라는 유명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원자들을 벽돌로 사용하는 건축에서 우리가 화합물이라고 부르는 정교한 구조물을 그 방식 대로 성실하게 재현하는 것과 한 원자가 또 다른 원자에 연결되는 결합의 상대적 위치와 수를 결정하는 것, 간단히 말해 공간에 원자들의 분포를 결정하는 것이 화학자들의 중요한 임무입니다.”

블롬스트란드는 이 책에서 원자로부터 어떻게 화합물이 형성되는지에 대한 지식, 즉 오늘날 흔히 '구조'라고 부르는 것에 관한 지식을 제공합니다. 더욱이 구조 결정은 화학의 가장 큰 임무였으며 다른 많은 기술들을 사용하여 접근해 왔습니다. 여러 이유 때문에 탄소화합물, 이른바 유기화합물의 구조 결정은 초기에 빠르게 발달하였습니다. 이 단계에서의 기술들은 일반적으로 순수화학에 속합니다. 사람들은 화합물의 반응으로부터 결론을 내리고, 그것의 분해 생성물을 연구하고, 그리고 더 단순한 화합물을 조합하여 원하는 물질을 합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도달한 구조는 개략적인 그림에 불과하였습니다. 즉 어떤 원자들이 주어진 원자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지만 원자 간의 거리나 결합 각도에 대한 정확한 값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화학결합의 최신 처리방법과 구조 및 특성 간의 상호관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위의 값들이 필요하고 그것은 오직 물리학의 기술을 이용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원자들의 상대적인 배치에 관한 현재의 지식에 공헌한 물리학은 엑스선 빔이 결정과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에 근거합니다. 회절이라 부르는 이 현상은 결정이 일정한 방향으로 엑스선 빔을 내보냅니다. 이렇게 나온 빔을 반사라고 표현합니다. 이 같은 반사의 방향과 세기는 결정 내 원자들의 종류와 분포에 따르기 때문에 구조 결정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막스 폰 라우에가 결정에 의한 엑스선 회절을 발견하였고 이것으로 19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것이 50년 전입니다. 이 업적은 엑스선 특성과 고체상태의 화합물 구조를 연구하는 데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였습니다.

구조결정의 초기 응용은 두 영국 과학자인 브래그 부자 의해 맨 처음 개발되었고 그들은 191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 기술은 그 후에 상당히 개량되었고 더욱 복잡한 구조들을 밝히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단순한 구조 외의 물질은 구조를 밝히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실험 자료로부터 그 화합물의 구조를 찾아내는 일반적이고 간단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수학적 계산 과정에서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였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쯤 너무 복잡해서 고전적인 화학 방법을 사용하는 모든 시도들로 해결하지 못했던 유기화합물의 엑스선 구조 결정이 가능한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1937년 다른 어떤 방법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맥스 퍼루츠 교수는 엑스선 회절로 헤모글로빈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케임브리지에서 실험을 하였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로렌스 브래그 경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여, 1938년 케임브리지 내에 있는 캐번디시 실험실의 실장이 되었는데, 그는 퍼루츠 교수가 얻은 결과를 보고 진행에 대한 격려와 매우 효율적인 지원을 하였습니다. 헤모글로빈은 생명 과정에 중대한 역할을 하며 살아 있는 유기체에 기본적인 물질인 단백질에 속합니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의 구성 요소여서 폐에서 산소를 흡수하고 난 후에 몸의 다른 조직에 산소를 전달하는 철을 포함합니다. 헤모글로빈의 분자는 거의 구모양이어서 구형단백질에 속합니다. 초기에 처음 시도하려는 물질로 선택된 이유는 좋은 결정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과 헤모글로빈 분자가 단백질치고는 아주 작기 때문입니다. 약 10년 전에 존 켄드루 교수가 퍼루츠 교수 연구팀에 합류하였고 그에게 할당된 일은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오글로빈은 또 다른 구형단백질이며 헤모글로빈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나 4분의 1 정도의 크기를 가진 분자입니다. 이것은 근육에서 발견되며 그곳에 산소를 저장합니다. 특히 많은 양의 미오글로빈이 고래와 물개의 근육조직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잠수할 때 많은 양의 산소를 저장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퍼루츠와 켄드루 교수는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쳤습니다. 아주 포괄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1953년이 되어서야 퍼루츠 교수가 무거운 원자, 즉 수은 같은 원자를 헤모글로빈 분자 내의 일정한 위치에 결합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것으로 회절무늬가 어느 정도 바뀌었고, 그 변화는 직접적인 구조 결정에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방법은 원리적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퍼루츠 교수는 새로운 방식과 훌륭한 기술로 그것을 적용하였습니다. 켄드루 교수 또한 미오글로빈 분자 내에 수은이나 금 등의 무거운 원자를 집어 넣는 대체방법으로 성공했으며 유사한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의 필수조건은 무거운 원자를 첨가했을 때 결정분자 내에 있는 다른 원자들의 위치를 바꾸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자가 실제로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은 단순히 분자의 거대한 크기 때문입니다. 브래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했습니다. "인도 대왕의 코끼리가 그 이마에 칠해진 금성을 하찮게 여기는 것처럼 분자는 대수롭지 않은 부착물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헤모글로빈과 미오글로빈의 직접적인 구조 결정에 대한 경로가 열렸다 할지라도 여전히 처리해야 할 방대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두 분자 중 더 작은 미오글로빈은 약 2,600개의 원자들을 포함하고 대부분 이것의 위치는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과를 얻기 위해 켄드루 교수는 110개의 결정을 조사하고 약 25만 개의 엑스선 반사 세기를 측정하였습니다. 만약 그가 고성능 컴퓨터에 접근할 수 없었다면 계산은 실제로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헤모글로빈 분자는 4배나 크고 구조는 아직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켄드루와 퍼루츠 교수는 좀 더 자세한 그림을 얻기 위해 훨씬 많은 수의 엑스선 반사 세기를 모았습니다.

켄드루와 퍼루츠 교수의 공헌으로 구형단백질들의 구조 뒤에 숨어 있는 원리들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25년의 오랜 노고 끝에 신중한 실험 결과를 가지고 구조 결정의 목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연구를 이끌어 왔던 독창력과 기술뿐만 아니라 이겨 내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인내와 끈기 때문에 두 과학자를 칭찬합니다. 이제 단백질 구조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수많은 새로운 구조 결정이 퍼루츠와 켄드루 교수가 가르쳐 준 경로를 따라 수행될 것을 확신합니다. 살아 있는 유기체에 필수적인 물질들에 관하여 얻은 지식은 생명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표명했던 조건, 즉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혜택을 제공한 자에게 상을 수여하라는 유지를 충족시킨 것이 분명합니다.

켄드루 박사님, 퍼루츠 박사님.
최근에 "오늘날 살아 있는 유기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말로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서 있다"라고 박사님 중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은 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데 매우 효율적으로 공헌했고, 그 세계를 처음으로 살짝 들여다본 사람들이었습니다. 박사님들은 체계적인 공동 연구를 통하여 구조의 엄청난 복잡성과 생물의 발생, 그리고 건강하거나 질병에 걸린 살아 있는 유기체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확고한 기초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대단히 만족하며 두 분의 훌륭한 업적에 대해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과학원을 대신하여 뜨거운 축하를 드리며 이제 전하로부터 1962년 노벨 화학상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스웨덴 왕립과학원 G. 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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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www.phy.cam.ac.uk/cavendish, wikipedia, naver, 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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