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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에스턴 Francis Aston

프랜시스 에스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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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endish Laboratory (캐번디시 연구소)
  • 작성 2015-09-16
  • 조회 6,128
  • 출생1877-09-01 영국 하본
  • 국적 영국
  • 분야실험물리학
  • 소속캐번디시 연구소
  • 출신대학케임브리지 대학교, 버밍엄 대학교
  • 주요업적질량분석사진기를 이용한 비방사성 동위원소 발견 및 정수법칙 발표
  • 수상노벨 화학상(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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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은 1877년 9월 영국 버밍엄에서 7명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금속 상인이자 작은 농장을 운영하였다. 몰번대학과 비커리지 학교에서 공부하며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된다. 1894년 지금의 버밍엄 대학이라 불리는 매이슨 대학에서 틸든(Tilden)과 프링클랜드(Frankland)지도 하에 화학을 공부하였으며 영국의 물리학자 포인팅 존 헨리 (Poynting, John Henry)에게 물리학을 배웠다다. 그의 여가 시간에는 유리세공 같은 장치 건설에 관한 다양한 공예를 연습하였다. 그의 장학금이 만기될 무렵 한 맥주 회사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잠시 배움을 멈추고 3년 동안 맥주공장 연구소에서 화학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 시절 화학보다 물리학에 대한 그의 흥미가 더 지배적 이였다. 기계 장치에 대한 그의 태도는 선박을 수송하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펌프를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것에서 나타났으며, 가스에 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진공관에 관한 놀라운 현상을 발견해냈다. 1898년 포스터 장학금을 수상한 그는 타르타르산의 유도체에 대한 광학적 성질에 관해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1903년 크룩스의 암흑부의 성질을 연구하던 버밍엄 대학을 졸업하여 이내 애스턴의 암부라 알려져 있던 현상을 발견하였다. 1909년 말, 그는 조지프 존 톰슨(J.J Thomson)의 제안에 따라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보조연구원으로 양극선에 관해 연구를 시작한다. 불활성 기체 네온의 두 개의 등위원소에 관한 존재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밝혀낸 시기였다. 하지만 이 연구는 1914년에서 1918년 까지 전쟁으로 인해 진행하기 어려워 졌고 당시 애스턴(Aston)은 왕립 항공 연구소에서 항공기 구조와 도우프에 관한 기압 조건의 영향을 연구하였다. 1919년 캐번디시 연구소로 돌아와 그는 다시 네온의 동위원소의 분리에 관한 문제에 부딪혔다. 그는 거대한 질량 분석기와 전자 집속의 독창적인 활용은 그가 분해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개의 등위원소 질량의 아주 극소한 차이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험기구의 발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다른 화학 원소로 원리를 확장 시켜 그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등위원소를 발견하였다. 이 연구로 인해 그는 다른 등위원소가 갖고 있는 정수에 가까운 질량을 규명할 수 있는 정수율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계발한 더 정확하고 개선된 기구로 계속해서 측정해 나갔다. 또한 원자 에너지 분야에서 중요한 부분이 된 정수율의 편차를 측정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는 왕립 협회와 철학 잡지에 발표되었으며 애스터 등위원소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애스턴은 스포츠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스키, 암벽등반, 테니스, 수영은 그가 가장 즐겨하고 잘하는 운동 이였다. 운동뿐만 아니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음악가이기도 하였다. 애스턴은 결혼하지 않았다. 그의 일식연구를 위한 원정에는 그의 여동생 헬랜과 동행하였다. 1945년 11월 20일 애스턴은 캐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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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동위체 개념은 방사성원소들의 존재와 변환, 그리고 관계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주로 발전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원소들을 포함하여 비방사성원소들도 방사성원소들과 똑같이 화학적 방법으로 분리할 수 없는 동위원소의 혼합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물질의 그와 같은 상태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 분야 연구에 길잡이별 역할을 하던 방사성 현상은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원자의 질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물리적 특징에 관한 조심스러운 연구에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런 방향으로 시도한 첫 연구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톰슨 경이 수행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그는 이른바 양극선이라 부르는 것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진공관 내에서 음극을 향해 높은 속도로 가속되는 기체의 양전하 입자를 말합니다. 이것들이 전극에 있는 구멍을 통과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 휘어짐의 정도가 전하당 질량비로 결정됩니다. 이 편차를 측정하여 희박한 기체 내에 나타나는 입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문제는 동위원소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질량의 다른 값, 즉 원자량의 차이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발발로 여러 해 동안 연구가 중단되자 톰슨의 실험은 어떤 결정적인 결과도 이끌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1919년 톰슨의 학생이었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애스턴 박사가 연구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톰슨이 사용한 것과 같은 원리에 기초를 두었지만 톰슨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진보한 질량분광기로 알려진 장치를 제작하였고 몇 배 더 정확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정확하고 정교한 그 장비에 포함된 디자인에 대해서는 지금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전하와 질량 사이에 일정한 비를 갖는 광선에 초점이 맞춰지면 공동중심에 집중되는데, 사진판의 도움으로 다른 유사한 초점과 비교하여 그 상황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질량분광사진을 얻을 수 있는데, 사진에는 원자량에 대응하는 각 선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각 원자량의 값은 선 간격으로 읽거나, 보통 탄소 12, 혹은 산소 16과 같이 표준으로 선택한 기본적인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선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습니다. 질량분광사진에 의해 원자량이 결정될 수 있는 정확도는 잘 측정된 경우에 1,000분의 1입니다. 질량분광사진에 의한 양극선 분석의 정확성이 크게 향상되어 애스턴 박사는 지금까지 단순하게 생각하였던 수많은 기본적인 원소들이 실제로는 두 개 내지 더 많은 동위원소의 복합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비활성 기체인 네온, 크립톤, 크세논, 할로겐족인 염소, 브로민, 알칼리 금속인 리튬, 포타슘, 루비듐, 그리고 더욱 복잡한 붕소와 규소, 주석과 셀레늄, 칼슘과 수은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한편 헬륨, 플루오린과 아이오딘, 탄소와 산소, 질소, 인과 비소, 나트륨과 세슘 등은 주로 한 개의 주된 원소로 이루어진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결과는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하고 화학 전반에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질량 분광사진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결과는 아닙니다. 최근에 열거한 원소들과 다른 여러 원소들의 측정된 질량들, 그리고 그들의 동위원소들의 질량들을 산소 16과 비교하여 정수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조사된 기초 물질의 수가 30이 넘고 증명된 동위원소의 수는 훨씬 더 많으므로 이 같은 일치는 단지 우연으로 간주할 수 없고 일반적인 타당성을 가진 자연법칙의 표현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정수법칙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100년 이상 화학연구와 관련된 난제의 해답을 얻었고 수 천 년 동안 인류의 마음에 떠오르던 추측이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단일성, 즉 모든 물질에 공통된 근본물질에 관한 주장을 오래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에게서 발견합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한 금속을 다른 금속으로 바꾸려던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연금술사의 마음이 뚜렷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생각은 17세기에 로버트 보일에 의해 더욱 명확하게 발달하였습니다. 보일에 따르면 모든 물체는 하나이며 같은 근본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들이 변화하는 다양성은 작은 부분이나 미소체의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 혹은 휴식이나 운동의 상태에 의한 것입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이 방식은 1815년 영국인 의사 프라우트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의 수의 집합체로 원소들이 이루어져 있다는 가설을 제안하기 전까지는 과학적인 화학 연구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프라우트의 견해가 옳다면 분명히 모든 원소의 원자량은 수소원자량의 정확한 배수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은 또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정확한 결정 분야에서 화학의 위대한 대가인 베르셀리우스, 스타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리처즈는 차례로 단일성과 물질의 같은 상태의 존재를 확립하였는데, 즉 어떤 원소들의 원자량은 수소원자량의 거의 정수 곱에 매우 가깝지만, 한편 다른 것들은 관찰오차의 한계에서 훨씬 벗어나기 때문에 고유의 소수를 제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원자량 결정이 더욱 완벽하게 이루어져도 가설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되어 프라우트의 가설은 더욱더 부정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애스턴 박사의 발견으로 프라우트의 이론은 살아남게 되었는데, 비록 창시자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형태라 할지라도 과학의 현재 입장에서 물질의 가장 단순한 작은 부분은 본질적으로 두 개의 다른 종류, 즉 양전하와 음전하를 띤 작은 입자인 양성자와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어떤 기본적인 물질의 원자량에서 우수리 수는 동위원소 성분으로 인한 내부계량적 관계의 단순한 통계적 효과로 보입니다. 그와 같은 우수리 원자량을 가진 원소의 전형적인 예가 염소입니다. 가장 정확한 결정에 따르면 염소의 원자량은 35.46입니다. 애스턴 박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염소라고 부른 것이 하나는 35의 원자량, 다른 하나는 37의 원자량을 가져 혼합의 질량이 정확히 35.46으로 조합을 이루는 두 개의 동위원소의 혼합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 원소가 정수법칙의 예외를 보이는데, 이 예외는 법칙 자체만큼 흥미롭습니다. 수소의 원자량은 질량분광사진에서 정확하게 소수를 보입니다. 이것은 크지는 않지만 0.008의 양을 나타내 관찰 오차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큽니다. 수소의 원자량이 1보다 확실히 무거운 것이 밝혀졌는데 산소 16과 비교하여 다른 원소들에 대해서는 잘 맞습니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핵이론에 따르면 수소는 모든 다른 원소와 비교하여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가정합니다. 이 원소는 핵이 밀접하게 채워진 큰 수의 질량단위로 구성되지 않고 단지 하나의 양성입자, 즉 양성자로 구성된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수소가 정수법칙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깊은 틈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애스턴 박사님.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질량분광사진의 도움으로 수많은 비활성원소의 동위원소와 정수법칙을 발견하여 화학을 비롯한 일반적인 자연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박사님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박사님이 이미 얻은 것 위에 앞으로 더 많은 과학적 성공을 이루기를 바라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희망을 가지고 이제 박사님이 수상을 앞두고 있는 노벨상과 명예에 과학원의 축하를 전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H. G. 쇠더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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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www.phy.cam.ac.uk/cavendish, wikipedia, naver, 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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