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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부테난트 Adolf Butenandt

아돌프 부테난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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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I (막스플랑크연구소)
  • 작성 2014-09-17
  • 조회 2,852
  • 출생1903-03-24, 독일 브레머하펜
  • 국적 독일
  • 분야생화학
  • 소속카이저윌헬름협회, 베를린대학교
  • 출신대학괴팅겐대학교
  • 주요업적성 호르몬 연구
  • 수상노벨화학상(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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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독일의 생화학자. 스테로이드 연구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성(性)호르몬을 연구하였다. 1931년에는 남자의 오줌에서 남성호르몬의 일종인 안드로스테론을 추출고정하고,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프로게스테론을 추출·고정한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마르부르크대학교·괴팅겐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27년 괴팅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괴팅겐대학교와 단치히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36년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나중에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으며, 1960∼1972년 막스플랑크 과학진흥회 회장을 지냈다.

1929년 미국의 E. A. 도이지와 거의 동시에 여성의 성 발달과 기능에 중요한 호르몬인 에스트론(estrone)을 분리했다. 1931년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스테론을, 1934년 여성의 생식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각각 분리하고 확인했다. 이로써 성 호르몬은 스테로이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명백해졌다. 루지치카는 콜레스테롤이 안드로스테론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밝혔고, 그 후 부테난트와 루지치카는 프로게스테론과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모두 합성할 수가 있었다. 부테난트의 연구에 힘입어 마침내 코르티손 및 다른 스테로이드도 합성이 가능해졌다.

1940년대 부테난트는 곤충 눈 색깔의 결함에 대한 연구를 통해 특정 유전자가 대사과정의 여러 과정에 필요한 효소 합성을 통제하며, 이런 유전자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대사과정에 결함이 나타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연구를 한 지 20년이 지난 1959년 부테난트와 그의 동료들은 누에나방의 일종인 ''봄빅스모리''에서 성(性)유인물질을 분리해냈는데 이는 페로몬(다른 개체의 반응을 유발하는 분비물)이라는 화학물질군(群) 중 처음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1939년 레오폴드 루지치카와 함께 성(性)호르몬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게 되었으나 독일 정부가 강제로 수상을 거부하게 하여, 1949년이 되어서야 상을 받았다.

*공동수상: 레오폴트 라보슬라프 루지치카; 크로아티아 태생 스위스의 화학자.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의 조교로 일하면서 제충제의 살충 성분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1912년에 슈타우딩거와 함께 취리히의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로 갔으며, 1917년에 스위스 시민이 되어 그곳에 강의하였다. 1926년부터 3년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에서 유기화학 교수로 재직했으나 그 후 다시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로 돌아가 화학교수로 재직하였다. 남성 호르몬을 탐구하여 분자구조를 규명하였고 합성에도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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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다음은 부테난트 교수의 공적에 관한 보고입니다.

비교적 최근인 12년 전까지만 해도 성 호르몬의 성질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에스트로겐 또는 난포 호르몬에 관해서는 난소와 태반 같은 특정 기관으로부터 추출한 물질이 거세한 암컷 쥐에서 특징적인 발정 현상을 야기한다는 것이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활성 원리의 안정성과 용해도에 관하여 단지 한두 가지 관찰이 가능했습니다. 에스트로겐 호르몬 화학에 관한 더 이상의 발전은 1923년에 알렌과 도이지, 그리고 1927년에 애쉬하임과 존덱에 의해 순수하게 생물학적인 발견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가능했습니다.

1929년 괴팅겐에 있던 부테난트 교수는 미국에 있는 도이지와 동시에 난포 호르몬 화학을 밝히는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두 과학자는 임산부의 소변에서 에스트로겐 효과를 갖는 물질을 결정형태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부테난트 교수는 이 물질을 폴리귤린이라 명명했고 이 명칭은 후에 에스트론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는 이 물질의 실험식이 C18H22O2라는 것과 이 물질이 옥시케톤이라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에스트론의 발견 직후 런던에 있는 메리앤은 임산부의 소변으로부터 그가 에스트리올이라 명명한 새로운 호르몬을 분리했습니다(1930년). 부테난트 교수는 메리앤의 발견을 확인했고 그 새로운 물질과 에스트론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스테롤과 에스트로겐 물질의 관계는 결정학적 근거 위에서 추정되었는데, 부테난트 교수와 메리앤이 각각 독자적으로 단지 3개의 벤조이드 이중결합이 이러한 물질들의 고리 시스템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 후에야 화학적 관점에서 추정이 가능해졌습니다.

1932년에 부테난트 교수는 스펙트럼 분석 결과와 특히 그때 확립된 콜레스테롤의 정확한 식에 근거해서 에스트론과 에스트리올의 화학구조식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추정한 고리시스템의 화학구조를 개선하는 중요한 과업이 남아 있었습니다. 부테난트 교수는 에스트리올 분자를 단계별로 쪼개서 두 가지 에스트로겐 호르몬 모두 페난트렌 핵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콜린산의 전이산물인 에티오빌라닉산으로부터 똑같은 다이메틸페난트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한편으로는 난포 호르몬 사이에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담즙산과 스테롤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두 번째 중요한 난소 호르몬인 코르푸스 루테움 호르몬은 여러 과학자들에 의해 1931년과 1932년 코르푸스 루테움으로부터 결정형태로 얻어졌습니다. 1934년 부테난트 교수와 베스트팔은 이 호르몬을 화학적으로 순수한 상태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프로게스테론이라 명명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 호르몬과 생리학적으로 비활성인 이수소화 알코올 프레그난다이올과의 긴밀한 관계를 보였는데 프레그난다이올은 부테난트 교수와 메리앤이 서로 독자적으로 임산부의 소변에서 발견했습니다. 1934년 가을에 부테난트 교수는 프레그난다이올을 프로게스테론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콜레스테롤로부터 이 중요한 임신 호르몬의 합성이 1939년 부테난트 교수에 의해 간단한 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정소성 또는 남성 호르몬을 화학적으로 탐구한 공적은 부테난트 교수와 루지치카 교수에게 공동으로 돌아갑니다. 부테난트 교수는 이 문제를 연구한 최초의 과학자입니다. 이에 관한 연구가 가능해진 것은 생물학적 연구에서 이 물질을 결정하기 위한 정량적 테스트법, 이른바 케폰 콤(capon comb) 테스트법을 발견한 후였습니다.

부테난트 교수는 남성의 소변 또는 그 대안인 클로로폼 추출물, 즉 약 1000분의 0.8이 클로로폼에 녹아 있는 추출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정제 과정에서 남성의 호르몬이 여러 가지 면에서 에스트론처럼 거동하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부테난트 교수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연구는 더욱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정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남성의 성 호르몬과 같은 생리학적 성질을 갖는 결정성 물질이 최초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부테난트 교수는 이 물질을 안드로스테론이라 명명했고 그 조성을 C19H30O2로 정의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1개의 메틸기와 5개의 수소원자를 더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만 에스트론과 다릅니다. 부테난트 교수는 콜레스테롤의 식에 근거해서 1934년에 안드로스테론의 완전한 구성식을 만들었습니다.

안드로스테론은 루지치카 교수에 의해 에피-콜레스테롤로부터 합성되었으나 곧 그것은 정소에서 얻어지는 진짜 남성 호르몬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1935년 라쿠어와 그의 동료들이 활성이 큰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정소 추출물로부터 분리했을 때 대단한 동요가 있었습니다.

테스토스테론과 안드로스테론의 긴밀한 관계는 그 화학적 조성을 확인하는 일을 비교적 쉽게 만들었고, 같은 해인 1935년에 부테난트 교수와 루지치카 교수는 같은 방식이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트랜스-다이하이드로 안드로스테론으로부터 테스토스테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테난트 교수, 루지치카 교수,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은 그 후 스테롤로부터 다양한 새로운 물질들을 합성했으며, 이 물질들은 남성의 성 호르몬 테스트에서 다양한 정도의 활성을 보였습니다.

다음은 루지치카 교수의 공적에 관한 보고입니다.

고터펜 또는 폴리터펜은 식물 왕국에서 굉장히 다양하게 발견되는데 원래 루지치카 교수의 연구 주제였습니다. 폴리터펜은 분자구조를 결정하기가 극히 어려웠는데 루지치카 교수의 특별한 실험기술을 통해 가능해졌습니다. 루지치카와 동료들의 선구적인 연구로 매우 많은 수의 중요한 폴리터펜이 완전히 조사되었습니다.

1924년부터 루지치카 교수가 근본적으로 새롭고 놀라운 결과를 얻는 1926년까지 사향노루와 사향고양이에서 나는 자연 취기제인 무스콘과 시베톤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시베톤뿐만 아니라 무스콘 분자도 탄소원자로 이루어진 단일 고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탄소원자의 수는 지금까지 알려진 고리 분자의 경우보다 상당히 더 크며,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취기제들을 연구하는 동안 루지치카 교수는 많은 유사 거대고리 화합물을 합성했고, 이러한 것들이 자연의 지방산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식물-생리학적으로 놀라운 사실이 세상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많은 흥미로운 관계가 루지치카 교수가 연구한 폴리터펜들 사이에 존재하며, 일련의 생리학적·의학적으로 중요한 무리의 화합물들인 담즙산, 스테롤, 그리고 성 호르몬들 사이에도 존재합니다. 루지치카 교수와 동료들이 성 호르몬에 관해서 얻은 많은 재미있는 결과들 중에서 남성의 성 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하는 화합물의 합성이 상징적으로 중요합니다. 안드로스테론과 테스토스테론의 합성방법을 확립해서 이 두 호르몬의 공업적 합성을 가능하게 한 것이 그의 공적입니다.

더군다나 루지치카 교수가 합성한 새롭고 다양한 관련 화합물들은 생리학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성 호르몬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 근본적으로 기여하였고, 따라서 미래의 연구를 위한 확실한 기초를 세웠습니다.

취리히의 특별 의례에서 이 노벨 화학상은 스웨덴 대사 벡-프리스 남작이 루지치카 교수에게 1940년 1월 16일, 다음의 말로 끝나는 연설 후에 전달하였습니다.

루지치카 교수님.
노벨재단과 스웨덴 왕립과학원을 대신해서 진심어린 축하를 전해 드리며, 동시에 인류에 대한 공헌에 대한 교수님의 연구가 더욱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교수님에게 1939년 노벨 화학상 증서와 메달을 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 아돌프 부테난트 교수는 1939년 당시 나치의 방해로 노벨상을 받을 수 없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에야 금메달과 상장을 받았다.

- 1939년 당시 전쟁을 이유로 루지치카 교수는 1945년에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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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mpg.de/en),google, wikipedia, naver, Nobelpriz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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