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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루이 알퐁스 라브랑 Alphonse Laveran

샤를 루이 알퐁스 라브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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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eur (파스퇴르연구소)
  • 작성 2016-03-11
  • 조회 6,818
  • 출생1845-06-18
  • 국적 프랑스
  • 분야의학
  • 소속파스퇴르연구소
  • 출신대학스트라스부르의료학교 의학박사
  • 주요업적질병 발생과 관련한 원생생물의 역할에 관한 연구
  • 수상생리의학상(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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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보

프랑스의 열대병학자. 말라리아 원충(原蟲)을 발견했고 말라리아의 다른 원생동물(原生動物)에 의해서 발생되는 질환에 관해서도 연구했다.

1845년 6월 18일 파리의 한 의사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군의관이자 교수였고 어머니는 고위 군사령관의 딸 이였다. 그의 유년시절 그의 가족들은 알제리로 갔다. 그의 아버지가 군의 감독관 자리에 오르게 되어 파리로 돌아왔다. 알퐁스는 파리에서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전문성을 따라가고자 하여 1863년 스트라스부르 국립 보건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866년 스트라스부르 시민 병원에 레지던트로 일했고 1867년에는 신경의 회복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1870년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의관으로 일했으며 메츠(Metz)에 응급실로 파병되었다. 1874년 육군 군의학교 교관이 되어 1878∼1883년 알제리에서 근무하던 중 1880년 말라리아 원충(原蟲)을 발견했다.

1882년 그는 알제리에서 만났던 환자의 피에서 발견한 기생충을 가진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의 피를 연구하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의 연구는 기생충이 말라리아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고 회의론자들에게 받아들여져 점차적으로 세계 많은 나라의 과학자들이 그에 대한 입증된 연구를 밝혀냈다. 1889년 그의 발견은 과학 아카대미 상을 수상하였으며 Ecole de Val-de-Gracedml의 군위생과 교수직에 오르게 되었다. 1894년 교수직을 그만 둔 후 그는 군의관 의료장을 맡게 되었는데, 연구실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돌보았고 과학적 탐구를 계속하길 원했다. 1897년 군에서 제대하여 파리의 파스퇴르연구소에 들어가, 말라리아의 다른 원생동물(原生動物)에 의해서 발생되는 질환에 관해서도 연구를 하였다.

1897년부터 1907년까지 혈기생 동물과 포자충강, 트리파노소마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를 진행해 갔고 1907년 ‘질병이 일어날 때의 원생동물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상금의 반을 파스퇴르의 열대 의학 연구실 설립에 기부했다. 1908년 그는 병리학회를 설립해 12년을 맡아왔다. 그는 말라리아에 대한 관심을 멈추지 않고 프랑스의 말라리아에 감염된 지역을 방문하였다. 그는 모기과 기생충같이 인간의 체외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이 발견될 것이라는 관점을 표명했는데 그의 주장이 로널드 로스의 연구로 인해 사실로 밝혀졌다. 알퐁스 라브랑은 말라리아모기와 말라리아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범위를 넓혀 갔다.

1900년 이후로 트리파노소마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개별적 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원들과의 협력을 통해 피기생체에 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토끼의 트리파노소마, 나가나 병과 동물의 혈액 속에 기생하는 수라를 발명시키는 트리파노소마, 감비아 강에서 서식하는 말의 트리파노소마, 트란스발에서 서식하는 소의 트리파노소마 그리고 니제르 상류의 트리파노소마, 새, 물고기 마침내는 수면병이라 알려진 적도의 아프리카 고유의 질병의 원인이 되는 트리마노소마를 연구하는데 성공했다.

알퐁스 라브랑은 27년 동안 원생동물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말라리아 기생충의 발견이 점차 확장되어 따라 오늘날까지 수의과 병리학과 의학에서 흥미로운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라브랑은 1893년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12년 명군단의 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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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연설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 생리·의학상 위원회는 질병 유발인자로서 원생생물의 중요성을 밝힌 연구 업적을 높이 평가하여 알퐁스 라베랑 박사님을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하였습니다.

그는 최근에 빠르게 발전한 원생생물학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이 분야의 실험과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였으며 최근까지도 탁월한 발견들을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원생생물을 질병의 원인으로 지적한 라베랑 박사님의 연구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려면 그의 초창기 연구가 이루어졌던 1880년의 상황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염성 질환의 원인에 관한 연구는 그 당시 세균학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파스퇴르 박사님의 ‘세균이론’으로 발효 과정의 수수께끼를 해결했으며, 감염 질환과의 관련성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880년대 무렵까지 발견된 병리학적인 세균으로는 탄저균, 재귀열 등이 있으며 결핵, 비저병(말의 전염병), 폐렴,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파상풍, 아시아 콜레라, 외상 열병 같은 다른 세균들은 1880년부터 1890년까지 하나씩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균들은 식물계의 마지막 분류인 세균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결과 말라리아와 같은 습지열의 원인을 그에 해당하는 미생물에서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몇몇 저명한 세균학자들은 자신들이 그런 미생물을 추적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폰틴마쉬의 습지에서 말라리아균을 찾아낸 클레프스 박사님과 토마시 크루델리 박사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879년 라베랑 박사님은 알제의 본(Bone) 육군병원에서 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사람의 혈액에서 발견된 검은 입자에 관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1850년에 멜라닌이라 불리는 이 입자가 발견된 이후, 이것이 단지 말라리아 환자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인지, 또는 다른 질병에서도 발견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논의되었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은 먼저 말라리아의 진단에 매우 중요한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이 연구 과정에서 그는 그동안 찾고 있었던 입자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기생충이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개체를 찾아냈습니다.

그의 초창기 연구는 신선한 혈액으로 어떤 화학 반응이나 염색 과정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원시적인 검사 방법을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외형을 가진 이들 새로운 개체의 중요한 형태들을 구분하여 훌륭하게 설명하였습니다.

1882년, 그는 잠시 이탈리아의 위험한 습지에서 연구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서도 말라리아 환자로부터 동일한 개체를 발견함으로써 말라리아 기생충을 찾아 낼 가능성은 훨씬 높아졌습니다. 1884년에는 마침내 이 기생충에 관한 첫 번째 업적으로서 『말라리아 열병의 특징』이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에 480명의 말라리아 환자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업적은 습지열병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은 이 기생충이 적혈구에서 성장하면서 적혈구를 파괴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파괴되는 과정에서 혈구 안의 적색 색소는 검은색의 멜라닌 입자로 변하였습니다. 그는 다양한 이 기생충의 중요한 형태에 대해 설명하였고, 성장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기생충에 대해서도 설명하였습니다. 처음 연구에서 라베랑 박사님은 이 기생충이 환자의 몸 밖에서 존재하는 것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습지의 물, 토양, 공기 등에서 기생충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비록 부정적이었지만 이 연구는 또 다른 연구들을 계속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라베랑 박사님이 1884년에 출판한 책도 이 연구의 결과이며, 이것은 1894년 부다페스트 위생학회 등에서 계속 주장되었습니다. 즉 습지열병의 기생충이 모기의 몸 안에서 제1기 성장을 한 다음, 모기가 사람을 물게 되면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앞에서 언급했던 부정적인 실험 결과와 사상충의 전염 방법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맨슨 박사에 의하면 이 필라리아 사상충은 모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라베랑 박사님은 알제에서 파리로 되돌아가면서 말라리아에 관한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분야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명백하게 해결하였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이 발견한 새로운 기생충은 세균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것을 정확하게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다른 미생물과 유사한 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원생동물과 같은 군에 넣었습니다. 우리는 염색으로 미리 처리하지 않은 혈액에서 말라리아 기생충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염색법을 사용하지만 라베랑 박사님이 이 작은 기생충을 보다 쉽게 관찰하는 방법을 발견할 당시만 해도 염색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라베랑 박사님의 통찰력과 예리한 관찰력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는 동시에 세균학으로 인해 본래의 연구를 그르치는 일이 결코 없었으며 습지열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반대에 좌절하지도 않았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의 이론은 차츰 정비되어 마침내 1889년에는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이 습지를 떠나야만 했을 때, 만약 그가 계속해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 즉 기생충의 성장 주기와 그 존재에만 집착했다면 그는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동물, 특히 조류의 기생충에 관한 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생충은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라리아 기생충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 연구가 이루어지는 동안 라베랑 박사님이 관찰한 수많은 것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관심 있는 각 영역의 전문가들에 의해 이런 발견들은 계속 연구될 것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주목할 만한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많은 연구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습지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라베랑 박사님의 연구를 계속 진행했던 많은 연구자들 중에는 라베랑 박사님의 이론적인 연구 이전에 그 목표를 달성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1897년, 미국의 매컬럼 박사는 이러한 기생충의 유성생식 원리를 규명하였고, 1898년에 로널드 로스(1902년 노벨상 수상) 박사는 가설에서 출발한 모기 이론이 사실임을 입증하였습니다. 1898년 5월에 인도에서 로스 박사가 보낸 조직표본을 라베랑 박사님이 받았다면 얼마나 흥미로웠을까요. 그리고 로스 박사가 실제로 연구한 것은 모기에 존재하던 말라리아 기생충이었다는 것을 라베랑 박사님이 알았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라베랑 박사님의 말라리아에 관한 발견은 다른 감염성 질환도 원생생물에 의해 비슷한 방법으로 유발될 수 있다는 가설을 부각시키는 역할도 했습니다. 열대 지역에서, 또는 다른 여러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람과 동물들이 걸린 질병들은 여러 면에서 말라리아와 유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질병들은 혈액의 부족, 혈액농도 감소, 열 등과 같이 말라리아와 유사한 증상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의 치료약인 퀴닌에 전혀 효과가 없었으며 습지병과 같은 군에 속하는 기생충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890년부터 이들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종류의 기생충이 설명되었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의 연구를 근거로 원생동물이 질병의 매개체일 것이라고 일단 예측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생동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원생생물과 관련된 질병 가운데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트리파노소마병입니다. 이에 속하는 수많은 질병들이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서는 나가나(Nagana, 체체 파리에 의한 치명적인 가축병), 수라(Surra), 카데라(Caderas sickness), 그리고 아프리카 적도의 갈지크트(Galziekte of Equatorial Africa, 남아프리카의 담즙병)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 병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대부분 지역을 황폐화시켰으며, 영양과 사슴 등과 같은 덩치가 큰 사냥감을 비롯하여 말, 낙타, 당나귀 등의 솟과 동물들을 공격하였습니다. 때로는 동물들이 모두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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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모두 트리파노소마라고 불리는 나선모양의 작은 기생충이 원인이었으며, 여러 종류의 파리가 동물을 쏘는 과정에서 전염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이 질병은 영양이나 성적 교섭의 관점에서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트리파노소마 가운데 의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면병’으로 알려진 전염병이었습니다. 수면병의 트리파노소마는 수년 동안 잠비아 강을 항해한 유럽 선박의 선장인 포드에 의해 1901년에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포드는 기생충에 대해 자세히 검토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후에 이와 동일한 연구가 더턴 박사님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그의 질병과 기생충에 대한 보고서의 후속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탐험대가 런던과 리버풀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 탐험대는 이 질병에 관련된 첫 번째 문제를 풀어 냈습니다. 이 질병에 관해 할 말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기에서 이것들을 길게 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라베랑 박사님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은 강압적인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말라리아에 관한 연구를 멈추어야만 했을 때에도 이 문제를 끝까지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말라리아 기생충을 발견한 사람은 라베랑 박사님이었지만, 이를 생물학적으로 철저하게 연구한 사람은 골지 박사와 로스 박사를 비롯한 다른 연구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리파노소마에 관한 한 그 반대였습니다. 즉 기생충은 수많은 장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연구하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기생충에 관한 형태학, 생물학, 병리학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운 사람은 라베랑 박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저절로 병에 걸린 큰 동물을 비롯해 인위적으로 감염된 많은 실험 동물을 파리에 있는 실험실로 가지고 와서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쥐, 조류, 어류 및 파충류의 트리파노소마를 연구하면서 그 범위를 더욱 넓혀 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는 동시에 트리파노소마증의 정확한 병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은 약 30가지의 트리파노소마를 연구하였고,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연구자보다도 새로운 종을 많이 발견하였습니다. 게다가 트리파노소마의 새로운 속(屬)인 트리파노플라스미아도 발견하였습니다.

라베랑 박사님은 다른 연구자와 함께 연구한 수많은 논문과 해설을 통해 자신이 발견한 것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그후 1904년에는 이들을 하나로 모아 「트리파노소마와 트리파노플라스미아」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논문은 지금까지도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06년에도 그는 니제르 북부의 소, 낙타, 말 등에게 유행하던 므보리, 소우마, 발리 같은 악성질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서적과 연구 그리고 수많은 발견들을 몇 마디의 말로 압축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의 수많은 연구와 업적들 속에서 우리는 기생충, 형태학, 감염이론, 기생충의 번식, 면역실험 등을 연구하기 위한 기술적인 발명들 또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업적들은 라베랑 박사님에게 원생생물 병리학의 창조자로서 선도적인 권한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과학의 선구자로서 지칠 줄 모르는 인류애를 베푼 그에게 올해의 노벨상을 수여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 교수위원회 G. 순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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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질병 발생과 관련한 원생생물의 역할에 관한 연구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 노벨 생리 의학상, 2010. 1. 18.,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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